행복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요? 며칠 전 행복의 조건에 관한 설문조사에서 한국은 첫 번째로 '돈'을 꼽았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대부분의 다른 나라에서는 '가족', '친구', '건강'같은 전형적인 대답이었고 어쩌면 설문조사의 정답 같은 항목을 선택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인에게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행복에 있어서 당연히 '돈'은 중요합니다. 돈과 행복, 행복지수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한국은 불행한 나라일까?
세계 행복 보고서(https://worldhappiness.report)에 따르면 2023년 행복지수 순위에서 한국은 57위를 차지했습니다. 행복지수 상위 국가들은 대부분 유럽의 국가들입니다. 특히 상위권에 있는 나라들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것은 '복지국가'입니다. 어쩌면 한국은 확실히 '복지국가'는 아직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때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유행을 할 정도였고 최근까지도 69시간 노동제, 국민연금 고갈, 부와 세금의 불평등같이 직접적으로 피부에 와닿는 제도마저도 아직 정비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급격한 경제성장을 겪는 과정에서 사회적으로나 국민들의 인식으로나 개인과 사회의 갭이 더 커져버렸습니다. 여전히 기성세대들에게 '밥 굶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줄 알아라', '그래도 월급 주는 회사인데 참고 일해라'같은 이야기를 종종 들으니까요.
그리고 언론에서는 앞다투어 살기 힘들다는 기사를 내보냅니다. 이는 저출산으로 이어지고 있고 한국은 곧 망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립니다. 얼마 전 발표된 행복지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한국은 하위권에 있고 사람들의 반응은 '그럴 줄 알았다.'정도였습니다.
행복은 소득순이다?
행복지수의 산출기준은 저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GDP, 복지수준, 자유, 부정부패, 기대수명(건강) 등으로 산출됩니다. 앞서 이야기한 조건들이 행복에 꼭 필요한 조건들이지만 허점은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한국의 GDP는 1조 8천억원으로 세계 10위 내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행복지수가 57위 인 것은 경제 말고 다룬부문에서 점수가 낮기 때문일까. 유럽의 관공서에서 간단한 일처리 하나 하기 위해서도 며칠이 걸립니다. 인터넷이 터지지 않는 곳도 많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병원, 대형 마트와 편의점이 곳곳에 있는 것도, 대중교통이 잘 발달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무엇이 부족해서 행복하지 못한 걸까? 돈과 행복은 절대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며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돈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이 둘이 비례하지는 않습니다.
소득이 늘어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행복을 느낍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밥 굶지 않는 것만으로도'행복할 수 있으니까요. 여기 까지는 확실히 돈과 행복이 비례합니다. 하지만 소득이 증가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그 이후로는 소득이 늘어나는 크기 대비 행복이 비례하지 않습니다. - 경제학자 이스털린의 역설 -
아마도 돈을 아무리 모으고 벌어도 만족하지 못하는 삶이라면 행복은 가까이 오지 않을 겁니다.
행복지수와 문화적인 차이
아시아는 행복지수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낮은 편입니다. 물론 경제적으로도 개발도상국이 많고 사회, 정치적으로도 안정되지 않은 나라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시아인의 특징을 감안해야 합니다. 아시아이지만 호주와 뉴질랜드는 압도적으로 행복지수가 높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
일례로 코로나 당시 마스크 착용에 관한 동양과 서구권의 반응은 많이 달랐습니다. 서구권의 많은 나라들은 '자유'를, 동양권에서는 '자유보다는 공동체'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서구권에 비해 동양에서는 주변사람들을 더 의식하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까'를 생각합니다.
제가 1년간 해외여행을 하던 당시 외국인들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자신의 나라를 아는가? 또는 한국가수 누구누구를 아는지? 에 관해 궁금해하더라'였습니다. 요즘 해외에서 '두유 노우 BTS?'가 인사말이라는 한국사람들입니다.
부탄의 행복과 인스타그램
부탄이 행복지수 1위라는 뉴스나 이야기를 접해본 적이 있을 겁니다. 당연히 위의 기준으로 순위를 정했다면 부탄이 행복지수 1위를 기록했을 리는 없을 겁니다. 문맹률이 50%에 육박하고 GDP, 복지, 의료등 뭐 하나 높은 점수를 받을 리 없는 나라인데 왜 이런 이야기가 나왔을까.
부탄이 행복한 나라라는 이야기가 나온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겁니다.
첫 번째는 대부분의 부탄사람들이 불교를 믿고 있어 현실에 만족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가난해도 마음만은 행복하다 또는 '원효대사 해골물'같은 에피소드처럼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것. 우리의 입장에서는 자기 계발서 같은 책에서나 볼 법한 일들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이것이 진짜 행복이다 아니다는 것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습니다만..)
두 번째는 외부와 단절되어 있습니다. 부탄은 문맹률이 높고 험준한 산악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어 부락단위의 마을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자연 속에서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따르며 주어진 환경에서 행복을 찾으며 살고 있습니다. 다른 누군가와 비교할 필요도 없고 나와 우리에게만 집중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상황이 좀 달라졌습니다.
부탄을 배경으로 한 '교실 안의 야크'라는 영화 속 촌장의 대사 "부탄이 행복지수 세계 1위라는데, 젊은이들은 행복이 외국에 있다고 생각해서 여길 떠나요."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부탄도 행복의 기준이 바뀌어 가고 있는 걸까요? 우스갯소리로 행복지수 1위였던 부탄의 순위가 떨어진 것이 '휴대폰 보급과 인스타그램'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마냥 웃음이 나오지는 않는 일화입니다.
다시 돌아가서, 돈과 행복의 관계는 어떤가요? 일정 수준 이상으로 돈을 벌게 되면 더 이상 행복도가 비례하지 않습니다. 그 일정 수준이란 것은 누가 어떻게 정할까요?
비싼 아파트, 명품백, 오마카세 같은 것들은 우리에게 행복을 줍니다. '명품소비 1위 대한민국'이라는 타이틀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400만 원짜리 명품옷을 입고 SNS에 올린 뒤 3천 원대 도시락을 먹는 것이 행복이라면 '행복을 위한 일정 수준 이상의 돈'에 대한 기준은 더 올라갈 겁니다.
정말 행복을 지수로 나타낼 수 있을까?
앞서 이야기한 몇 가지 이야기를 종합해서
- 코로나 당시 마스크 착용에 관한 동서양의 관점
- 해외여행 시 인사말이 '두유노우 비티에스?'일 정도로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더 중요한 한국인의 특성
- 인스타그램 때문에 행복도가 떨어졌다는 부탄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남과 비교하지 않는 유럽, 서구권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더 높게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릅니다. 물론 '돈',이나 '사회적 성공'과 같은 물질적인 부분이 행복과 상관없다는 뻔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개개인에게는 행복의 목표에 돈과 집, 사회적 성공이 빠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회전체 또는 수십억 명의 인류, 인간이라는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시대와 문화, 종교에서 오는 차이를 '행복지수'가 반영해 줄 수 있을까? 정말 한국 사람들은 유럽사람보다 불행할까?
그냥 비슷하거나 같은 조건에서도 누구는 행복하다고 느끼고 누구는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다만 그 누구가 커다란 문화나 사회적 관습으로 나누면 유럽사람과 아시아 또는 한국사람으로 나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똑같은 조건이 주어지더라도 유럽사람보다 한국사람이 행복을 덜 느낄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잘못되었는가? 아닙니다. 행복의 기준은 엄연히 다르니까. 그냥 행복의 기준이 다를 뿐인 것이고 그것은 사회와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한국만의 다른 기준이 필요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아주 뻔한고 지루한 이야기로 귀결되는 이 주제에서 그나마 한 가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있습니다. 그저 또 다른 누군가가 만들어낸 숫자일 뿐인 '행복 지수 57위'라는 타이틀에 스스로 '그럴 줄 알았어'라며 나를, 우리를 더 낮게 볼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도 남과 비교하고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걱정하는 수치일 뿐이니까요.
언론과 매스컴, 유튜브 등 곳곳에서 계속 '한국인은 불행하다. 불행하다.' 주문을 외우니까 정말 한국이라는 나라는 불행한 나라가 되는 것 같은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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